“누가 죽였는지가 아니라 시대적 맥락서 이유 찾아”
1980년대 주류 사회에 던져진 질문이다. ‘누가 빈센트 친을 죽였나?(Who Killed Vincent Chin?)’ 르네 타지마 페나 UCLA 교수와 크리스틴 초이 뉴욕대학 교수는 이 물음을 다큐멘터리 필름 속에 담았다. 이 작품은 지난 198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록 영화 부문 최종 후보작까지 올랐다. 공동 제작자 중 한 명인 페나 교수(사진)를 인터뷰했다. 그는 현재 UCLA에서 아시안-아메리칸학 교수로 활동 중이다. -다큐 제목에 담긴 의미는. “빈센트 친을 누가 죽였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왜(why)’가 중요했다. 법적 쟁점은 살해 여부가 아니라, 살해 동기였다. 술집에서 단순히 말다툼을 벌이다 발생한 사건이 아니었다. 인종과 증오가 빚어낸 사건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시대적 맥락을 살펴보는 게 중요했다. 거기엔 미국 자동차 업계의 불황, 쇠퇴, 일본 차에 대한 적대적 여론 등의 요소가 있다. 혐오의 환경은 그렇게 조성되고 있었다. 한 집단이 악마화되면 그 안의 사람들 역시 비인간화된다. 이중적인 의미를 담았다.” -분노는 왜 절제되지 못했나. “에벤스 부자에게 전과는 없었다. 번듯한 직장도 있었다. 그런 이들이 왜 방망이를 들고 친을 찾아다녔을까. 술집 댄서 증언에 따르면 다툼이 불거졌을 때 친은 덩치가 컸던 에벤스 부자에게 몸싸움에서 이겼다. 백인들에게 당시 아시안 남성은 작고, 위축돼있고, 복종적인 존재로 인식됐다. 그러한 고정관념, 시대적 반감, 패배감 등이 맞물리며 분노가 증폭됐을 것이다. 폭력은 다양한 요소로 유발된다. 인종 역시 폭력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 -지금은 어떤가. “아시아계는 1800년대부터 이곳에 왔다. 당시 아시안은 ‘동료’ ‘시민’이 아닌 값싼 노동력의 공급원 정도로 취급됐다. 이러한 인식이 영원한 이방인, 타자, 급기야 인간 이하의 존재, 폭력의 대상으로까지 이어졌다. 일례로 1871년 LA에서 발생한 학살로 중국인의 10%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1900년대 초에는 인도, 필리핀 이민자들이 도시 외곽으로 쫓겨났다. 인종 폭력은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다. 역사를 보면 친의 사건부터 오늘날 인종 관련 범죄들은 사실 전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아시안은 집단으로 묶인다. “나의 할아버지는 1906년에 샌프란시스코로 왔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백인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그들은 일본계인 할아버지에게 ‘칭크’로 지칭하며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쳤다. 그때나 지금이나 백인들은 우리를 구분하지 못한다. 이는 지속적인 차별을 낳고, 불평등을 고착시킨다.” -어떤 식으로 고착시키나. “아시아는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등 수십 개 민족, 지역 등으로 나뉜다. 매우 이질적이고, 다양성을 가진 인종이다. 게다가 아시안을 ‘모범적 소수계’라는 범주에 묶어두려 하지만, 실제 아시아계 미국인 내에서는 사회, 경제, 교육 등에서 큰 격차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아시안 하면 하버드 같은 명문대 입학 경쟁을 떠올리지만, 대다수는 일반 칼리지에 다니고 있다. 다수의 아시안 학생을 볼 때 아이비리그의 몇 안 되는 비전형 입학 정원을 얻겠다는 건 우리에게 큰 의미가 없다. 보다 근본적으로 장벽을 없애려는 인식이 필요하다.” -모범적 소수계의 위험성은. “그 용어가 처음 등장한 건 1950년대였다. 흑인 민권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날 즈음인데 아시아계에 대한 일종의 가스라이팅이었다. 흑인처럼 행진하거나, 요구하지 않고 열심히 일만 하는 이미지로 각인시켰다. 이는 당시 아시아계가 직면했던 높은 빈곤율, 차별 문제를 외면하게 했다. 노동 및 민권 운동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의 활동을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아시아계의 투쟁은. “중요한 건 우리는 매번 ‘피해자’로만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맞서 싸웠다. 1902년 캘리포니아로 왔던 한국의 도산 안창호 선생만 봐도 알 수 있다. 커뮤니티에서 한인 단체를 설립해서 많은 활동을 하지 않았나. 아시안-아메리칸이 인종차별 등에 맞서 싸우고 다른 소수계와 연대하는 건 오랜 전통이다. 친의 사건 때도 흑인 민권운동가였던 제시 잭슨 목사가 아시안과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앞으로가 중요한데. “빈센트 친의 사건이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아시안으로서 불만 표출이 아닌, 정의를 위한 투쟁을 벌였다는 점이다. 백인 우월주의가 폭력, 반감 등만 조장하는 것처럼 불만은 우리에게 공포, 피해의식만 조장한다. 사회를 ‘우리’와 ‘그들’로만 나누는 폐해를 낳는다. 반면, 정의는 포용성과 평등을 담고 있다. 불만이 아닌 정의를 위해 싸우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이러한 정신이 다음 세대인 아시아계 젊은이들에게 강화되고 있다. 이를 위해 영화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쓴다. 어떤 이는 선거에 출마하고, 음악으로 정의를 말한다. 아시아계 민권의 미래를 밝게 본다.” 관련기사 [아시안 증오범죄 예방 프로젝트] 묵살된 정의에 투쟁, 외침 더 커졌다 90년 전 벽화도 예견…미국차 동력은 아시안 41년 전 모터시티에도 정의는 없었다 장열 기자ㆍjang.yeol@koreadaily.com아시안 증오범죄 예방